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리랑 제3편 (문단 편집) == 평가 == 좋은 평을 얻지 못했다. 다음은 당시의 관람평. > 대체 아리랑 제3편에서 나운규가 보여주려 한 것은 무엇인가. 컴컴하고 더러운 화면 불유쾌한 녹음은 설비의 불완전으로 핑계해 버릴지라도 아리랑 제1편에서부터 적지 않은 세월이 흘러간 오늘날 2편보다 낫기는 고사하고 1편에서 보여준 그 정조와 리듬은 어디다 다 집어치워버리고 신파 활극을 다시 되풀이하는 책임은 누가 져야 옳을 것인가? 소위 토-키[* 발성영화]라고 하면서 에로큐-숀[* elocution]을 조금도 모르는 - 이것은 조선 배우들이 다 그렇다 - 연출은 기가 막히거니와 나씨의 '킹콩' 흉내(미친 사람은 그런 괴성으로만 표현될 것인지!)에 있어서는 불쾌를 지나쳐 증오의 감을 갖게 하였다. 신일선의 재기는 석일(昔日)의 발랄했던 신선미를 찾아볼 수 없음은 물론 그 평면적인 연기로 그대로 재기를 꾀하는 것이 일종 연민의 느낌을 주었다. 아리랑 제1편에서 그 아름다운 정조에 감격했던 사람들에게는 나운규, 신일선, 윤봉춘 기억에 새로운 이들의 이름에서 상기되는 아름다운 상상을 향락하는 편이 사진[* 영화를 가리킴]을 보는 편보다 훨씬 유쾌할 것이다.(''[[매일신보]] 1936년 5월 27일'') [각주] [[분류:한국 영화]][[분류:1936년 영화]][[분류:없어진 영화]][[분류:청소년관람불가 영화]][[분류:양주남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